샤워하다 떠오른 생각, 영어로는 Shower thoughts 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어이없지만 기발한 상상이다. 절대 종교적 주장을 담은 글이 아니다. 재미있는 관점으로 생각하고 즐겨주시길.
양자기술의 중첩상태
보통 컴퓨터는 1 아니면 0이다. 켜졌냐 꺼졌냐, 딱 떨어진다.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“둘 다일 수도 있음”이라고 한다. 이게 바로 중첩 상태다.
게다가 더 재밌는 건, 그 상태를 누가 보면 바뀐다는 것. 이걸 관측 문제라고 부른다.
예를 들어 어떤 입자가 1인지 0인지 모호하게 있다가, 누군가 측정하려고 다가가면 갑자기 “나 사실 1이었어” 하고 확정짓는다.
안 보면 둘 다일 수 있는데 보면 갑자기 한쪽으로 정한다. 약간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다.
또 하나는 얽힘이다. A입자랑 B입자가 연결되어 있으면, 한쪽 상태가 정해지는 순간 다른 쪽도 자동으로 정해진다. 떨어져 있어도. 뭔가 운명적이다. 뭔가 쌍둥이 같기도 하다.
요약하자면,
- 상태가 불확실할 수 있다
- 보는 순간 상태가 정해진다
- 서로 연결돼 있는 경우도 있다
참 신기한 세계다.
중용의 뜻
이제 중용 얘기를 해보자.
불교나 유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인데, 치우치지 않음을 뜻한다.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,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고,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아닌 그 어딘가. 딱 중간.
예를 들어, 욕망을 너무 억누르면 삶이 메말라지고, 너무 풀어주면 방탕해진다. 그래서 그 중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. 그걸 중용의 덕이라고 한다.
중용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.
확고한 듯하면서도 유연하고, 고정된 듯하면서도 흐르는 듯한 태도다.
요약하자면,
-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
- 상황을 보면서 중심을 유지한다
- 겉으론 평온하지만 속은 계속 움직인다
이쯤 되면 뭔가 익숙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.
근데 이게 왜 양자랑 닮았지?
여기서 갑자기 눈에 띄는 게 있다.
양자도 확정적이지 않다. 상태가 모호하다.
중용도 확정적이지 않다. 극단을 피한다.
양자는 관측하면 상태가 변한다.
중용도 누가 툭 건드리면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. 하지만 다시 균형을 잡는다.
양자 얽힘처럼 중용도 관계 속에서 움직인다. 나 혼자 잘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라, 상황과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.
그러니까 둘 다,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균형을 추구한다.
결론: 양자든 중용이든, 애매함을 인정하는 방식이다
양자기술은 과학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,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.
중용은 철학의 영역인데도, 정해진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.
둘 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.
그런 면에서 양자기술은 물리학계의 중용이고,
중용은 철학계의 양자물리학일지도 모른다.
확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에서,
양자처럼 열려 있고 중용처럼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
오히려 더 합리적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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